IT 용어 때문에 헤매지 말자
20여년 전 IT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일입니다. 첫 주 회의에서 팀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시스템과 호환되는 솔루션을 구축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멘붕이었습니다. 시스템? 솔루션? 프로그램? 서비스? 다 똑같이 들리는데 왜 다른 단어를 쓰는 것입니까?
오늘은 그때의 제가 알았으면 좋았을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프로그램: 단 한가지 목적
프로그램은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쓰는 카카오톡,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모두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처음 접해본 프로그램은 '직원 출퇴근 관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카드를 찍으면 출근 시간이 기록되고, 퇴근할 때도 찍으면 퇴근 시간이 저장되는 단순한 기능이었습니다.
하나의 명확한 목적. 그게 프로그램의 특징입니다.
계산기는 계산만, 메모장은 글쓰기만, 게임은 오락만 제공합니다. 컴퓨터에게 "이렇게 해라"라고 알려주는 명령어들의 집합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스템: 오케스트라 같은 협업
몇 년 후,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B2C 커머스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프로그램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 고객이 상품을 검색하고 둘러보는 쇼핑 프로그램
- 장바구니와 결제를 처리하는 주문 프로그램
- 재고와 상품 정보를 관리하는 상품관리 프로그램
- 배송과 물류를 처리하는 배송 프로그램
- 고객 문의와 AS를 담당하는 고객관리 프로그램
이 모든 프로그램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함께 작동했습니다.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재고가 자동으로 차감되고, 그 정보가 배송 프로그램으로 넘어가 포장과 발송이 시작되는 식이었습니다. 동시에 고객관리 프로그램에서는 주문 상태를 실시간으로 고객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서비스: 고객이 느끼는 경험
고객사와 직접 미팅하는 일이 많아졌을 때쯤 깨달은 게 있습니다. 고객들은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카페 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복잡한 건 몰라도 됩니다. 그냥 손님들이 앱으로 주문하고, 미리 결제하고, 매장에 와서 바로 가져갈 수 있으면 됩니다."
바로 이게 서비스입니다.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넷플릭스 앱은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넷플릭스 본다"고 할 때는 그 앱을 실행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편리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그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솔루션: 원스톱 해결사
한번은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의뢰한 'e커머스 솔루션' 컨설팅이었습니다.
삼성전자 담당자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온라인 직판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한 솔루션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 다국가 쇼핑몰 구축 및 운영과 교육
- 글로벌 결제 시스템 연동
- 국가별 물류 및 배송 관리
- 다국어 고객 서비스 체계
- 현지 마케팅 및 프로모션 관리
- 재고 및 공급망 최적화
- 매출 분석 및 리포팅
마치 해외 진출을 위한 올인원 패키지처럼, 삼성전자가 글로벌 온라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능과 서비스가 하나로 묶여있었던 것입니다.
실전에서 구분하는 법
단순하게 바로 쉽게 구분 짓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쿠팡을 예로 들면:
- 프로그램: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쿠팡 앱 그 자체
- 시스템: 상품 검색, 결제, 배송 추적이 모두 연결되어 작동하는 전체 구조
- 서비스: 로켓배송처럼 고객이 실제 경험하는 편의 기능
- 솔루션: 쿠팡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온오프라인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와 조직 등 토탈 구축 패키지
왜 구분해서 알아야 할까?
처음엔 "다 비슷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이 구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객이 "프로그램 하나만 추가해주십니다"라고 하는 것과 "솔루션을 도입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건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거든요. 전자는 며칠, 후자는 몇 달짜리 일입니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기술적 접근이고, "서비스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의 접근입니다.
IT 용어들이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다음에 IT 전문가와 대화할 때 이 구분을 기억하십니다. 상대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하는지 파악하면 훨씬 대화가 수월해질 것입니다.
20여년 전 회의에서 멘붕했던 제가 지금은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듯이, 여러분도 곧 이런 용어들이 친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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